루틴이 없다고 여기에 쓰자마자, 바로 루틴이 마련되는 상황이 발생. 앞으로 더 뭔가 많이 써봐야겠다. ㅋㅋㅋ
불면증이 너무 심해서 아침에나 눈을 붙이곤 했었는데 요즘엔 잠도 잘 잔다. 그것도 오전 12시-2시 사이에!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다. SNS도 잘 안 보고, 지하철을 타는 한두 시간 동안은 심지어 책을 읽는다. 손바닥만 한 책들은 들고 다니며 읽기에 좋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른 책을 또 읽다가 잠든다. e북을 사야 되나 고민될 정도.
이 건강한 생활을 가능케 한 출발점은 아무래도 도시락 싸기 인 것 같다... 매일 밥을 사 먹으면 식비가 너무 많이 나가서 친구 제의로 함께 작업공간에 도시락을 싸서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그러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고 또 메뉴 고민도 해야 하니까 밤낮으로 잡념이 사라진다. 요리를 배워둔 걸 지금 써먹게 되다니 역시 뭐든 배우고 볼 일이다. 얼마 전엔 가지전을 해갔는데 정말 너무너무 맛있어서 허공에 치어스를 했다. 과거의 나 잘했어!
자고 일어나는 시간과 더불어 전반적인 생활 루틴이 고정되니까 자투리 시간이라는 것도 생기고, 그걸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해서도 고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단은 나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지루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뇌가 가려워서 책이라도 읽고 있는데 이 다음은... 몇 권 읽고 생각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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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이사를 간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안락하고 편안해 보이는 공간이다. 과거 폭력적인 환경에서 탈출해 살던 옥탑방에 비하면 아주 넓고 쾌적하다. 감회가 새롭기도 한데... 그 어떤 경제적 지원 없이 여자 혼자 착실히 일해서 이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어머니시다.
그래도 나는 옥탑방에 어떤 유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옥탑방에서 살 때, 1층에서 슈퍼를 운영하시던 집주인 어르신들이 때때로 찾아오는 위협으로부터 어머니를 숨겨 보호해 주셨다고 한다. 매일 학교 가서 창밖만 바라보고 책을 거꾸로 집어 읽는 등 조용한 일탈을 일삼던 열 살 무렵의 나는, 문득 인정과 상장이 너무 고파져서 새벽까지 열심히 그린 그림으로 학교 단상에 올라가 상을 타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도 그 무렵에 만났던 것 같다. 미술학원 선생님이셨는데 그 은혜는 아마 앞으로도 다 갚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아슬하게 울퉁불퉁 높아 걸려 넘어질까 두려웠던, 옥상으로 가는 계단. 어쩔 수 없이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시기. 가족으로부터 도망쳤고, 가족이 아닌 타인들로부터 더 큰 애정과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고독하고 괴로웠어도 도저히 부정하거나 미워할 수 없는 시기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 낡은 옥상이 먼 아래보다는 확실한 안락함의 공간이었음을 성인이 된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어머니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분이셔서 사정이 나아질 때마다 꾸준히 이사를 도모하셨다. 때문에 거주하던 공간에 근거해 삶의 시간을 나누는 일은 우리 집에서 언제나 있어왔는데, 새로운 곳에서는 또 어떤 추억을 쌓고 대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나간 시절의 보따리를 풀어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새 집의 화사한 베란다 쪽에는 내 작업 공간도 생길 예정이다.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다. 내 양 팔 벌린 키만 한 화판을 넣기에도 알맞아, 햇살 속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겠지. 그러면 컴퓨터로 그리는 것보다 그 공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큼지막한 창에 어떤 커튼이 어울릴지가 요즘 최대의 고민거리이자 관심사다. 아직 마음에 드는 얇은 커튼을 찾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햇빛을 가리는 암막 커튼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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