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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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친구에게 인덱스 가득한 책을 빌리고, 새 작업 주제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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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거실에서 웅웅대는 소리가 들려서 깼는데, 캐나다에서 돌아온 삼촌 목소리였다. 어머니와 삼촌 모두 목소리 톤이 낮아, 두 분이서 대화하시는 동안 작은 거실이 닮은 두 파동으로 웅웅징징 울리는 느낌이. 자느라 제대로 새해 인사를 하지도 못했는데 그래도 조카라고 세뱃돈을 챙겨주고 가셨다. 쌍둥이 사촌 남동생들은 벌써 고등학생이라고. 그렇구나. 데면데면해서 명절에도 안 모이는 우리집이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소식은 주고받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연구 주제에 관해 사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작업 크리틱 할 때 사생활에 가까운 타인의 가족 이야기까지 들을 기회가 작년부터 종종 있었다. 석사과정을 이수하며 전우애 비슷한 친밀도가 높아져서인지, 아니면 다들 서로를 믿고 마음 깊이 사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서인지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는다. 대부분이 사회적 상식으론 '불완전한' 가족 이야기다. 거기에 나 또한 우리 집 이야기를 꺼내 얹곤 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이야기를 '대화 분위기가 안 좋아질까봐 말하기를 꺼리거나, 일부러 우회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커뮤니티와 교류한다는 건 꽤나 큰 안전감을 준다.
난 그냥. 생각보단 정상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의 경계라는 게, 되게 별 거 아니라는 감각이다. 각각의 반듯한 정상가족의 조부모님에게서 나고 자란 부모님이 만나, 또 새로운 반듯한 4인 규모의 정상가족을 꾸리는 경우가 어쩌면 더 드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주변만 다들 아랑곳 않고 흘러가는대로, '나와 닮은 저 자가 비를 맞지 않도록, 겨우 가려 주듯이' 빗방울 떨어지는 처마 밑에서 함께 사는 걸까. 그치만, 그렇다고 꼭 우울하거나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지. 기본적으로 가족이란 함께 머물러 견디는 사람이면서 필요 시엔 분리해 살 수도, 분리해 살아야만 할 수도 있는 타인이 아닌가. 검토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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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도 어김없이 작업하러...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며, '그런데 왜 개찰구에서 카드를 오른쪽에 찍지? 회전막대는 왼쪽에 달려있는데.'라는 생각을 했더니 집으로 돌아올 때 그만 무심결에 카드를 왼쪽에 태그하고야 말았다. ㅋㅋㅋㅋㅋ 당황해서 머뭇거리다가, 다시 환승하는 것처럼 태깅하고서야 개찰구를 지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오른쪽이 조금 더 보편적인 방향이라 시스템이 그렇게 돼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대학 새내기 때부터 지하철을 n년 탔어도 태깅 실수를 한 건 처음이라 퍽 놀랐다. 나는 왼손잡이라 왼쪽이 더 편한 방향인데, 이거 뭐 어떻게는 안 되겠지? 100년이 지나도 오른쪽은 옳은 쪽일 테니.
어릴 때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할머니가 손등을 찰싹 찰싹 때리시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할머니를 나무라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찰싹 맞곤, 이어지는 갈등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내 왼손잡이 특징은 할머니로부터 유전된 거였다. 할머니는 교정된 양손잡이로,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어떤 일이든 엄청나게 빨리 해치우시곤 했다.
내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면 평범하게 잘 쓴다고 놀라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손잡이를 고쳐보고자 3일 밤낮으로 연습한 결과라는 건 잘 몰랐을 것이다. 급식을 먹으면 내 먹는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며 오른손으로 수저를 바꿔 쥐어 주던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해야 돼?" 라고 묻자 음식을 흘릴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 날은 찝찝함과 불쾌함이 온종일 남았었지. 대충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국을 떠 먹었는데, 그 버릇은 계속 유지되어 지금도 식사를 할 땐 양손잡이다. 살면서 왼손잡이는 양 손을 쓰기에 유리해서 손재주가 좋고 능숙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양 손을 쓸 수밖에 없게 된 맥락은 지우고 말하는 것 같아 썩 유쾌하진 않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OO씨 왼손잡이였어?" 라며 새삼 놀라는 반응도 이제는 익숙하다. 다행히 그래도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다른손잡이를 낯설게 여기는 정서가 꽤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일은 마음에 물비늘을 드리운 것 같은 모양만을 옅게 남길 뿐이다. 그저 '이집트 문화권에서는 왼손은 화장실에서나 쓰는 손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왼손으로 돈을 주는 행위 등은 대단히 실례다'라는 말 같은 걸, 미래에 갈지 안 갈지도 모를 타지 여행을 염두에 두곤 눈여겨 보기도 하는, 이제는 정말 그런 정도다. 그런데 말야, 새삼스럽지만. 그럴 거라면 피라미드나 벽화들은 왜 대칭을 지켜 조형한 걸까? 어떻게 인간은 대칭적으로 생겨서 치밀하게 양 쪽의 균형을 추구하고 숭배하면서도, 실은 한 쪽을 더 선호할 수가 있는지.
왼손잡이라는 사실로 소수자성을 들먹거리거나 할 생각은 없다. 차라리 어릴 땐 내가 특별한 거라고나 생각해보려 했는데, 그냥 오른손은 불편하기 때문에 왼손을 더 사용하는 것뿐이라 딱히 어떠한 특별함이나 장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내가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왼손잡이임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겪는 이질감이 마음의 물비늘로 축소됨을 바라보며,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이전까지의 나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걸 체화한 경험이라든가.
음력 새해를 지나며 이런 걸 생각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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